부여 시가의 남동족 금성산 기슭에 넓게 자리한 국립부여박물관은 93년에 새로 옮긴 것이다. 금성산은 "삼국유사"에서 오산, 부산과 함께 백제 삼영산의 하나라고 말한 일산이다. 백제 때에는 영산에 걸맞게 절들이 있었겠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흔적뿐이고 이름이 밝혀지거나 터가 제대로 발굴된 곳은 없다.

  국립부여박물관의 뿌리는 백제 문화와 유적을 보존하려고 1929년에 부여지방 사람들이 만든 '부여고적보존회'에 있다. 이런 민간 차원의 노력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1939년에 '조선총독부 박물관 부여분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옛 뿌리로서의 백제에 관한 일본사람들의 관심이 깊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방 뒤에 '국립박물관 부여 분관'이었다가 1970년에 부소산 남쪽 기슭에 새 건물을 지어 소장품을 전시하게 되었다. 이때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것이다. 그 뒤로 새로운 발굴과 연구성과에 따라 새로운 박물관의 필요성을 느껴 금성산 남쪽의 넓은 터에 옮긴 것이다. 더불어 단순 전시가 아닌 사회교육시설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방법으로 전시실을 꾸며 놓았다.

  상설전시실인 선사실, 역사실, 불교미술실과 야외 전시실에 주로 백제의 유물을 중심으로 1,000점이 넘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또 기획 전시실을 두어 특별기획전을 열기도 한다.선사실에는 부여 지방을 중심으로 충청남도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유물들을 전시하였으며 부여 송국리 선사취락지 발굴 결과를 토대로 청동기 시대의 마을 모형을 꾸며 놓아 입체적인 이해가 쉽도록 했다. 크게 부여 송국리 청동기 시대 마을과 무덤 출토 유물, 대전 둔산동 집터 발굴 유물, 대전 괴정동 출토 덧띠토기와 검은 간토기 등의 토기류, 예산 동서리 출토 청동제기 등 청동 무기와 제기, 토기 등이 전시되어 선사 시대 충남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역사실에는 주로 사비 시대의 백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고 원삼국 시대 유물이 곁들여져 있다. 금성산 기슭에서 발견된 벼루며 서천에서 출토된 손잡이 잔 등 섬세하고 유연한 선을 보이면서도 용도에 따라 매우 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백제토기들이 있는가 하면 능산리 무덤에서 발견된 금동제 관장식, 금귀고리 등의 금속공예품들, 부소산 근처 왕궁터에서 발견된 사람얼굴무늬가 새겨진 토기조작 들이 전시되어 있다.불교미술실에는 사비 시대 백제의 불교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남아 있는 백제의 불교 문화를 통틀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부여 규암리에서 출토된 금동관음보살상(보물 제195호)과 부여 외리 절터에서 발견된 무늬전돌들이 전시되어 있어 이 박물관의 중심전시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야외에 있는 조각들도 볼 만하다. 앞뜰에는 보령 성주사터에서 가져온 성주사 비머리와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유인원을 기린다고 신라 문무왕3년(663)에 세운 당 유인원 기비 등의 비석들이 비각 안에 있고, 석조불입상, 고려 때의 오층석탑들도 있다.박물관 구조가 우리 나라 전통 건축의 중정(가운데뜰)을 도입하여 전시실을 설치하였으므로 전시실에서 전시실로 옮아갈 때 이 가운데뜰을 보게 되는데 거기에 부여 석조를 놓았다.처음에는 뒤뜰에 모아 놓았던 석불상과 문인석들을 박물관 마당 이곳 저곳에 놓았다. 본 건물에서 나와 가벼운 산책 삼아 마당을 거닐며 고려시대 충청도 지역의 푸근하게 웃는 보살상도 만나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