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 서쪽으로 백마강가의 구드래나루는 지금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예로부터 부여에서 청양으로 통하던 나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백마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의 선착장이 되었다. 이 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잔잔한 물살에 흔들리며 백마강에 몸을 실어 보는 것도 부여를 음미하는 좋은 방법이다. 화려한 유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 가는 곳마다 어디든지 조금씩은 서글픈 전설을 흘리고 있는 곳, 그래서 전설로 추억하고 전설로 상상해야 하는 곳 부여에서는 참으로 어울리는 일이다.

  '구드래'라는 말은 지금 우리 나라 말에는 남아 있지 않은데, 오히려 일본어에 그것을 어원으로 삼은 '구다라'가 남아 있다. 일본말의 '구다라'는 '큰 나라', 곧 섬기는 나라, 본국, 대국이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백제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일본의 옛 수도 나라의 호류지에는 백제관음이라고도 하고 구다라관음이라고도 하는 불상도 있다. 한편 종교적으로 토착신앙과 관련된 지명으로 보는 설도 있다. '구드래'는 '굿들개'가 변해서 된 말인데, 굿들개란 굿, 곧 천지신명의 제사를 모시던 곳 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백제 역사 기록에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적지 않으며, 그것은 불교가 정착되기 전까지 백제가 숭앙하던 토착종교의 시을 모시는 제천행사였을 것이다.

  나루에서 상류 쪽으로 고란사 아래는 '대왕포'라고 부른다. "삼국사기" 무왕 37년(636) 조에는 "3월에 왕은 좌우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사비하(백마강) 북포에서 연회를 베풀고 놀았다. 이 포구의 양쪽 언덕에 기암과 괴석을 세우고 그 사이에 기이한 꽃과 이상한 풀을 심었는데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왕은 술을 마시고 흥이 극도에 이르러 북을 치고 거문고를 뜯으며 스스로 노래를 부르고 신하들은 번갈아 춤을 추니, 이때 사람들은 그곳을 대왕포라고 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백마강을 따라 내려오는 물길 중간쯤에 오른쪽으로 강에 걸쳐 그림자를 드리운 산이 하나 있다. 오산, 일산과 함께 사비 세 영산의 하나인 부산이다. 이 산의 산신들이 오가며 백제를 지켰다고 하니 역시 신선상상을 보여 주며, 토착신앙의 성지였던 듯하다. 지금은 백마강이 고운 모래사장을 넓게 드러내고 있지만 옛날에는 물이 많아 금강을 타고 큰 배들이 많이 오르내렸던 곳이다. 더욱이 홍수가 지거나 할 때면 이 부산은 마치 강물에 뜬 섬과 같아 보여서 '뜬섬'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유람선을 타면 2.5km 남짓 걸려서 하류인 규암 나루터에 닿는다. 백제대교가 지나가는 나루터 위에는 숲이 우거진 절벽에 수북정이 있다. 백마강을 바라보는 풍광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 수북정에서 지은 풍류객들의 시도 많다. 이 정자는 조선 광해군 때에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이 인조반정을 피해 이곳에 와서 지은 것이다. 자신의 호를 따서 정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아래쪽에 있는 바위가 규암이다. '규'(窺)자는 본래 '엿본다'는 뜻으로 '규암'은 부여 사람들이 입으로 부르던 '엿바위'를 한자말로 쓴 것이다. 이 엿바위에는 '자온대'(自溫臺)라는 글씨가 굵게 새겨져 있다. 백제 때에 왕들이 규암나루를 건너 왕흥사에 행차하는 일이 많았다. 왕흥사는 규암나루 건너에 있었는데 법왕2년(600)부터 지어 무왕 35년(634)에 완공한 백제의 국찰이었다. 왕이 강을 건너 왕흥사에 가다가 잠시 쉬면서 바위에 걸터앉으면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졌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말로는 아첨하는 사람들이 왕이 오르기 전에 미리 바위를 데워 놓았던 것이라고도 한다. 또 한편 자온대는 이 바위가 아니라 구드래나루 근처의 가마바위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