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탑의 저녁노을, 수복정에서 바라보는 봄날 백마강가 아지랑이,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노을 진 부소산에 간간이 내리는 부슬비, 낙화암에서 애달프게 우는 소쩍새, 백마강에 고요히 잠긴 달빛, 구룡평야에 내려앉은 기러기떼, 규암나루에 들어오는 돛단배, 부여의 팔경이다. 이중 수북정, 고란사, 낙화암이 부소산에 있고 다른 네가지도 부소산에서 내려볼 수 있는 풍경들이니 부소산은 부여팔경을 다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도 하겠다.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으로 부여의 진산으로 부여의 부쪽인 쌍북리에 있는 해발 100m쯤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구릉이다. 북으로 강을 두르고 바로 산이 막아선 형상이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고구려 군사를 방비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는 점이 공주의 공산성과 흡사하다. 그래서 백제의 초기 도읍지로 추정되는 경기도 하남 위례성터와 함께 백제식 도성 방식을 보여 준다.

  이 부소산에는 왕궁과 시가를 방비하는 최후의 보루였던 백제의 부소산성이 있다. 산성이 완성된 것은 성왕이 538년에 수도를 사비로 옮기던 무렵으로 보이나 그보다 앞서 500년쯤에 이미 그 선왕인 동성왕이 산봉우리에 산성을 쌓았고, 후대에 무왕이 605년에 고쳐 다시 쌓았다.성곽은 산정에 테뫼식(머리띠식)으로 산성을 쌓고, 그주위로 다시 포곡식(성의 내부에 낮은 분지가 있는 형식)으로 둘렀으며 축조 방식은 흙과 돌을 섞어 다진 토석혼축식이다. 경사면에 흙을 다진 축대를 쌓아 더욱 가파른 효과를 낸 성곽이 2,200m에 걸쳐 부소산을 감싸고 있다. 사적 제5호이다.
부소산성에 들어서서 바로 오른족 길로 접어들면 삼충사가 있다. 백제 말의 3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데 1957년에 처음 세워졌고 1981년에 지금처럼 대대적으로 만들었다.5분 남짓 더 걸어가면 있는 영일루는 사비성의 동대가 되는 영일대가 있던 자리이다.지금 건물은 1964년에 홍산에 있던 홍산문루를 옮겨 지은 것이다. 부소산의 동쪽 산봉우리이니만큼 아침 해뜨기를 보기에 안성맞춤이어서 '해 맞는 곳'으로 이름이 붙었겟다.그 아래쪽으로는 군창터가 있어 너른 터에 철책을 둘러 놓았다. 백제때에 군대 곡식창고였다고 한다. 지금은 잔디를 심어 놓았지만, 땅속을 파면 불에 검게 탄 쌀이나 보리, 콩이 나온다고 하는데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저항하던 백제군이 군량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1915년에 한 국민학생이 칡뿌리를 캐다가 처음으로 발견했다니 땅속에 묻힌 지 1,250년 만의 일이다.

  군창터 옆에 움집 두 채가 있어 이채로운데, 이것은 백제 때 군인들의 움막을 발굴 복원해 놓은 것이다. 1m가 채 못 되게 움을 파고 사방에 벽을 두른 뒤 지붕을 얹은 모습인데, 가운데 화덕에서 나는 연기를 빼려고 환기창을 달아놓은 것이 재미있다. 바로 옆에 본래 움집터를 발굴한 곳은 현대식 건물을 지어 놓고 볼 수 있게 했다.부소산 가장 높은 곳에는 사자루가 있다. 한자가 '사비'와 비슷하나 왜 사자루가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백제 때에는 송월루가 있었으니 해맞이 영일루와는 반대로 달을 보내는 곳이다. 지금 건물은 1919년에 당시 군수가 임천의 문루였던 개산루를 뜯어다 짓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현판 '백마장강'의 시원하고 힘찬 글씨는 근대 서예의 한 봉우리인 해강 김규진(1868~1933)이 쓴 것이다.

  바로 아래쪽으로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육모지붕의 백화정이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 힘들지 않은 걸음이라도 땀이 났을 만한데 백마강 강바람에 땀을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부소산성에 오르는 이들은 대개 여기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실은 그 바로 아래 나무 모양의 난간을 두른 자리가 백마강이 휘돌아 가는 모습이 배경으로 더 근사하게 잡히는 곳이다.

  아래쪽에 낙화암이 있다.사비가 나당 연합군의 발 아래 유린될 때에 삼천 궁녀가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아래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에 더 잘 보인다. 삼천 궁녀 전설이 깃든 곳이다. 아래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에 더 잘 보인다. 삼천 궁녀 전설로 해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원래 이름이 '타사암'이니 곧 (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다.사실과 전설의 차이는 이런 이름에서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끔찍한 역사도 세월의 더게는 그런 대로 옷을 입혀 준다.
조선 숙종때의 사람 석벽 홍춘경은 이곳에 와서 낙화암에 비추어 백제의 스러짐을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읊조렸으니 오늘에 와서도 쓸쓸한 부소산성과 잘 어울린다.

  나라가 망하니 산하도 옛 모습을 잃었고나
홀로 강에 멈추듯 비치는 저 달은 몇 번이나 차고 도 이즈러졌을꼬
낙화암 언덕엔 꽃이 피어 있거니
비바람도 그 해에 불어 다하지 못햇구나

가파르게 내려가는 계단 길 왼족에 약수가 유명한 고란사가 있다. 바위 절벽 좁은 터에 법당 한채를 돌아가면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물을 한번 맛보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북적하다. 왕에게 이 약수물을 올릴 때 반드시 띄웠다는 .고란초는 바위 틈새 어딘엔가 숨어서라도 있을 법한데,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서인지 찾아보기가 어렵다.
절벽 아래쪽에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백제대교가 놓인 규암나루까지 갈 수 있는데 배를 타면 반드시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하는 유명한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 한번쯤 유행가 가락에 실려 보는 것도 좋겠다.
사비 도성의 후원이기도 했던 부소산성은 한갓진 산책로로는 그만이다. 시내에서 올라 사자루를 거쳐 낙화암과 고란사까지 이르는 길은 천천히 걸어 2시간 남짓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