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터 한가운데에 의젓하게 자리한 이 오층석탑은 백제가 멸망해 간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채 1,400년을 버텨 왔다. 어느 나라보다도 불교가 유성했을 백제의 불교 문화 가운데 자리로만 남아 있는 목탑은 다 스러지고 없지만, 지금 남아 있는 탑은 익산 미륵사터 탑과 이 정림사터 오층석탑 2기뿐이다. 특히 이 정림사터 탑은 백제 석탑의 완성된 형태로 손꼽는 것이다. 미륵사터 탑이 작은 부재들을 엮은 흔적이 보이는 점에서 목탑을 석탑으로 번안한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것에 비해, 이 정림사터 탑은 부재들이 한결 단순해지고 정돈되어 비로소 석탑으로서의 완성미를 보여 준다. 국보 제9호로서 손색없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백제탑으로서 정림사터 탑의 특징은 기단이 단층으로 1층 지붕돌의 비례에 견주어 훨씬 좁고, 면석의 모서리 기둥은 위로 갈수록 좁아져 목조 기둥의 배흘림수법이 남아 있으며, 지붕을 받치고 있는 받침돌이 지붕돌과는 다른 돌로서 두공처럼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 마무리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지붕돌이 경사지지 않은 얇은 판석이면서 처마는 살짝 반전시켜 경쾌한 상승감을 주는 점들을 꼽는다. 또 전체적으로 키가 늘씬해 상승감을 보이는데 그것은 1층 몸돌이 훌쩍 솟고 2층부터의 몸돌은 높이가 1층의 반으로 줄어들면서 지붕돌의 너비는 차차 줄어져 가파른 기울기를 보이기 때문이다.

   정림사터 탑은 8.33m나 되어 결코 작지 않은 탑인데도 멀리에서 보면 그리 육중한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에 크다는 인상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다가갈수록 장중하고 위엄 있는 깊이가 느껴진다. 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사방을 빙 둘러보면 보는 자리에 따라서 장중함과 경쾌함이 교차되어 느낌이 새롭다. 아마 단번에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곱씹는 맛을 느끼게 하는 백제의 맛이 이런 데서도 나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통일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에 옛 백제 지역인 충청도와 전라북도 지방에 세워진 탑 가운데 많은 탑이 정림사터 탑의 문법을 지니고 있어, 이 탑을 본떠 백제 지역 나름의 정서를 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백마강 건너의 장하리 삼층석탑이 그렇고, 멀리는 서천의 비인 오층석탑과 정읍의 은선리 삼층탑이 그러하다. 부여군 외산면의 무량사탑도 이 탑을 닮으려 애쓴 흔적이 보이며 서산 보원사터의 오층석탑은 늘씬한 조카 같은 모습이다. 또 익산 왕궁리의 오층석탑은 정림사터 탑과 너무도 닮은 점이 많아 한때 백제 때의 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 정림사터 탑은 이 지역의 조형적인 지주였다는 뜻이겠다.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다. 부여 보건소 앞에서 공주 쪽으로 150m 정도 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우회전해 400m 더 가면 길 왼족으로 정림사터가 있다.

  숙식은 부소산성과 같다.
입장료와 주차료
어른700(640), 군인과 청소년 400(350), 어린이 300(250)원 ()은 30인 이상 단체
시간당 대형차 1,000, 소형차 600원